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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너에게 하지 못한 말

여행에지치다 2025. 2. 12.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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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야."

지수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여전히 예뻤다. 하지만 그 미소는 더 이상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잘 지냈어?" 그녀가 먼저 말을 건넸다.

나는 순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잘 지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솔직하게 힘들었다고 해야 할까. 결국 입을 떼긴 했지만 목소리가 내 것이 아닌 듯 떨렸다.

"응, 그럭저럭."

그럭저럭. 사실 거짓말이었다. 그럭저럭이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이별 후의 공허함, 놓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놓지 못하는 미련. 하지만 그런 감정을 꺼내놓기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잔인했다.

"다행이다. 나,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지수의 눈빛이 흔들렸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예감할 수 있었다. 미안하다고? 잘 지내길 바란다고? 혹은, 우리가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묻는 걸까?

나는 심장이 요동치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녀의 다음 말은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그날, 헤어지자고 한 거... 나 혼자 결정한 게 아니었어."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뭐?"

"사실, 너한테 말 못 한 게 있어."

나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단순한 이별이 아니었다. 그녀의 표정에서 묘한 슬픔이 묻어났다. 말할까 말까 망설이는 듯한 눈빛. 나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움켜쥐었다.

"지수야, 대체 무슨 말이야?"

지수는 주변을 한번 둘러봤다. 마치 누군가 듣고 있을까 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나도 긴장했다.

"우리... 다시 이야기할 수 있을까? 여기 말고, 조용한 곳에서."

나는 그녀를 따라 근처의 한적한 공원으로 향했다. 지수는 벤치에 앉아 한숨을 쉬더니, 드디어 입을 열었다.

"우리 회사, 기억하지?"

"당연히 기억하지. 네가 다니던 곳이잖아. 근데 갑자기 왜?"

지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을 이었다.

"사실... 나, 퇴사했어."

"뭐...? 왜?"

"그날 헤어지자고 한 것도, 내 의지가 아니었어."

숨이 턱 막혔다. 내 의지가 아니었다고? 그렇다면...

"누가 시킨 거야?"

지수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한참을 침묵하더니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넌 모를 거야. 우리 회사가 어떤 곳인지. 나는... 단순히 직장인 줄 알았어.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나는 숨을 삼켰다.

"너랑 만나면서, 내 주변 사람들이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했어. 네가 위험하다는 말, 너랑 계속 만나면 안 된다는 말... 처음엔 그냥 헛소리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 상사가 직접 날 불러서, 너와 헤어지라고 했어. 그렇지 않으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거라고."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뭐...? 그게 무슨..."

"나도 몰라. 하지만 그들은 진심이었어. 난 겁이 났어. 그래서 널 지키려고... 그렇게 말한 거야."

순식간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녀가 나를 지키려고? 나와의 관계가 그녀의 회사에서 문제였다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 회사... 대체 뭐 하는 곳이야?"

지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무언가 거대한 비밀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비밀이, 우리를 갈라놓았다는 것을.

지수는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했다.

"난 지금도 후회해. 하지만... 늦었어."

"아니, 아직 늦지 않았어."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네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라도 나한테 말해줘. 지수야, 난 널 포기하지 않을 거야."

지수는 나를 바라봤다. 흔들리는 눈빛.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러면... 넌 감당할 수 있어?"

그녀의 말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를 잃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 감당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건 단순한 이별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제서야, 우리는 진짜 문제와 마주하게 된 것 같았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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